접시꽃 당신 / 도종환
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
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
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
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았습니다
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
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뻐져나갑니다
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
남루한 살림의 한 구석을 같이 꾸리며 살려했었는데
내가,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드려야 할
남은 하루하루의 앞날은
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
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
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
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오고
우리가 버리지 못했던
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
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
내 마음의 모두를 줄 수 있는 날들이
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
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
난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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